서면 생략과 단순화로 재구성한 자연
선생이 즐겨 택한 소재는 자연이다. 화가 입문시절부터 즐겨 그린 주위의 풍겨은 평생동안 줄기차게 추구했던 미적 탐구의 대상이었다. 초기 습작기를 사실주의로 풀발한 선생은 자연의 소재를 충실히 재현함으로써
기본기를 보강하고 소묘력의 기량을 쌓았다. 수학시절 무려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석고대생 한 가지에만 매달려 파고 들었다는 초기의 집념이 오늘의 선생을 있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이다.
선생의 풍경은 사진 찍듯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 자연을 별도로 재구성해서 그것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이다. 즉 밑그림이 그려지기 이전에 이미 머리속에 한폭의 그림이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머리속이 캔버스 역할을 하는 셈이다.
대상에 대한 시선도 대범하며 화면의 생략과 감필, 소재의 단순화를 통해 최대한 절제한다. 군더더기같은 설명은 배제한, 이를테면 나열형이 아닌 생략형 화면이기에 선생의 풍경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흔히 보아온 남도의 풍경과는
또 다른 맛과 깊이가 있다.
대범한 자연관과 담대한 터치, 꼭 써야 할 곳에 요긴하게 들어가는 정감 넘치는 색체, 계속 덧칠해지는 두툼한 질감의 화풍 등 선생의 조형세계는 독특한 회화적 경지에 올라 있다.
윤기있는 붓의 촉감이 파도처럼 화면을 타고 흘러내린다.
"사진처럼 묘사하면 그게 사진이지 그림이예요? 캔버스라는 절대적인 세계속에 최선의 미를 창출해 내는 것, 즉 작가가 원하는 아름다운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회화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한 그루의 나무, 흐르는 강물,
안개 낀 산봉우리 등 우리 눈에 비친 자연계의 모든 형상에는 관념이나 사상이 담겨있지 않지만 화가의 눈에 비쳐 묘사되는 자연계의 대상에는 작가의 개성과 시각, 이미지와 영감이 담겨있어요. 화가가 대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조형적 해석이 나올 수 있잖아요? 그게 그림의 원천이 되는 거지요."
대상과 자아, 물질과 정서, 실체와 느낌이 한 공간에서 만나는 선생의 작품은 넉넉하면서도 정겨운 정취가 풍긴다.